토욜, 이욜 정말이지 이거 하나 붙잡고 있느라 머리 아파 죽겠습니다..
포스트 작성할땐 관심가는거라서 그런지 줄줄 써지는데..
왜그리 리포트는 어렵게 느껴지는건지...
이거 하나만 올리고 바로 죽어야 겠네요..
낼도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간단히 제출용으로만 작성되었고 추가부분 있음
혹시나 검색엔진을 통하여 리포트 필요하신 분이 계실지도 몰라서 올려봄..
두아원
○ 줄거리 요약
두천장은 어머니를 어려서 잃은 자신의 하나뿐인 딸 두아와 함께 살아 가는 가난한 선비로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우고 글재주는 있었지만 뜻이 이루어 지지 않아서 아무런 벼슬도 얻지 못한 가난한 선비이다. 두천장은 동리의 채노파 에게 생활비가 없어 돈을 빌려 썼는데 과거를 보러갈 여비조차 없어 다시 채노파 에게 여비를 빌리려 한다. 채노파는 두천장의 딸이 아직 7살의 어린 나이이긴 하지만 너무나 이뻐 보이고 착한 나머지 자신의 며느리로 삼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두천장은 채노파가 자신의 딸인 두아를 며느리로 삼고 싶은것을 알고 어쩔수 없이 전에 빌린 돈과 함께 과거의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채노파 에게 자신의 딸 두아를 부탁하고 과거를 보기 위해 서울로 떠나게 된다.
13년이란 세월이 지난다. 두천장이 채노파 에게 맡긴 자신의 딸 두아는 17세가 되어 채노파의 아들과 합방을 하였지만 3년도 되지 못해 채노파의 아들은 허약한 몸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고 두아의 나이는 20살이 되었다. 산양현 남문의 새로의 라고 하는 뛰어난 의사가 있었지만 채노파에게 돈을 빌리고서 채노파 에게 일부러 갚지 않았다. 어느날 채노파는 빌린 돈을 받으러 새로의를 찾아 갔지만 그는 그의 시골집에 가야 돈을 갚아 줄 수 있다고 얘기하고 채노파를 인적이 없는 곳 까지 끌고가자 채노파를 가지고 온 밧줄로 목졸아 죽이려 하지만 지나가던 장려아와 그의 아버지가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채노파는 장려아 일행에게 구해지게 된다. 장려아와 그의 아버지 장영감은 채노파와 그의 며느리인 두아가 모두 혼자 살아가고 있는 과부인 점을 알게 되어 그의 아들 장려아는 채노파의 며느리와 장영감은 채노파를 아내로 맞아 들이려 한다. 채노파의 집에까지 들러 채노파는 며느리인 두아에게 새로의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실과 함께 장영감 부자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에서 자신과 두아가 부자에게 결혼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을 하게된 내용까지 두아에게 말하지만 두아는 내키지 않아서 시어머니인 채노파의 뜻을 거스르게 된다. 장영감 부자는 채노파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고, 장영감의 아들인 장려아는 자신을 거부하는 두아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 하고 싶어서 채노파를 독살할 계획을 세우고 새로의에게 찾아가 독을 얻어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채노파의 병문안을 함께 간다. 병이난 채노파에게 두아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장려아는 두아가 간을 가지러 간 사이에 음식에 독을 타서 채노파 에게 가져다 주지만 채노파의 몸이 좋지 않아 먹지못하게 되어 장려아의 아버지인 장영감이 독이든 음식을 먹고 장영감은 바로 정신을 잃고 죽게 된다. 장려아는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이유로 두아를 자신의 아내로 맏이하려 하지만 두아는 끝까지 자신이 죄를 지은것은 없고 결혼도 원치를 않게 되어 두아는 결국 관아로 가게 되어 관의 심판을 받게 된다. 관에가게 되어 고소장을 접수한 후에 태수는 원고인 장려아와 피고인 두아의 말을 들어보았지만 자신에게 죄가 없다는 말밖에 들을수가 없었다. 장려아는 지금까지의 채노파가 살행당할 뻔한 이야기, 장영감 부자가 자신들을 구해준 사실, 그들의 나쁜 생각으로 자신들을 아내로 만드려 한 얘기와 함께 장영감이 죽게된 내용 일체를 태수에게 말하였지만 태수는 이런 어떤것도 믿지 않고 피고는 맞게 되면 모든 것을 자백한다고 생각하고 두아에게 몽둥이질을 가하였다. 하지만 두아가 사실을 자백하지 않자 태수는 시어머니인 채노파에게 매질을 가할것을 명령하자 두아는 어쩔수 없이 자신이 장영감을 독살하였다고 거짓 자백을 하게 되었고 바로 다음날 두아는 처형에 처해지기로 되었다.
처형이 되는날 시어머니인 채노파 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처형이 되는 곳 에서 자신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다. 하얀천을 깃발에 꽂아 자신의 목을 벤후에 억울하게 죽은것을 하늘이 알면 피가 모두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닌 하얀천 에 묻게 될것임을 알리고, 삼복더위인 당시에 한발이 내릴 것 이라고 하고 처형을 당하였다.
두아의 아버지 두천장은 딸 단운과 이별후에 서울에 도착후 과거에 급제 하여 관직을 얻게 되었다. 후에 자신의 딸 단운을 찾으려 사람을 시켰지만 이미 채노는 이사를 가버렸다는 말밖에 들을수가 없게 되었다. 두천장 초서지방의 가뭄으로 인하여 초서지방을 조사하러 오게 된 감찰관으로 문서를 들어보던중 시아버지를 죽인 두아라는 여자의 사건을 보게 된 후 서류를 제일 아래쪽에 두고 잠이 들었다. 불이 꺼지고 눈을뜬 두천장은 초를 밝히고 다시 서류를 확인 하던 중에 이미 보고 아래에 놔둔 서류가 다시 올라와 있는것을 보고 놀랐다. 귀신이 된 두아가 불을 다시 꺼뜨려 아버지와 대면을 하게 되었는데 다름아닌 그 귀신은 7살에 채노파에게 맡겨진 자신의 딸 두아였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딸 단운이 너무나도 사악한 죄를 지었기에 용서하지 않으려 하였지만 두아는 그동안의 자신의 일과 자신의 억울함으로 인한 가뭄이라고 설명드리자 두천장은 자신의 딸 단운이 억울하게 죽어 갔다는 사실을 알고 해결하기 당시 사건에 관련된 장려아, 채노파, 새로의 등을 심문하여 모든 사건을 종결하고 두아의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여 주면서 마치게 된다.
○ 두아원을 보는 나만의 시각을 시작하며..
두아원을 읽어 보면서 실제로 두아원을 어떻게 분석하고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지 정확한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당시의 시대상황이나 법, 생활 습관 등을 알지 못하고서는 한 작품의 설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작품의 전체적인, 그리고 세밀한 부분을 떠나 하나의 극본이라 생각해 보고 두아원을 분석해 보며, 다른 작품과 비교를 통해 나만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한다.
○ 두아원 이란..
두아원은 관한경이 제작한 원대 당시의 시대적 부패와 부조리를 담은 잡극으로 주인공의 억울하게 죽게 되고 자신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발생되는 일련의 사건들로 하여금 17년 동안 뵙지 못한 아버지를 다시 만나 비록 귀신으로 나마 자신의 무죄를 아버지인 두천장 에게 알려 아버지인 두천장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게 되어 억울하게 죽은 자신의 딸의 억울함을 풀어 주는 해피엔딩으로 결론 짖는 내용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 귀신으로 나타난 두아의 의미
두아원을 읽고 보며 가장 하이라이트 부분이라 생각하는 두아가 귀신으로 나타나는 장면에서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에서 아버지의 유령이 나오는 듯한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물론 내용은 판이하게 틀린 작품이지만 유령으로 나타나게 되어 자신의 무죄를 설명하는 두아, 복수를 요구하는 햄릿의 아버지의 유령을 통해서 결론으로 통하는 중간 역할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유령과 귀신의 등장을 통하여 인과 또는 권선징악의 의미를 해결할수 있는 의미를 내포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두아원의 대표 인물들의 분석&성격
두아 : 아명은 단운이며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아버지 두천장과 생활하다가 7살 때 아버지와 떨어져 채노파의 며느리로 맡겨지게 된다. 여자 주인공의 성격이 모난 부분을 설명하는 작품이 있을까 생각하지만 두아 역시 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고, 20세에 비록 3년 밖에 같이 지내지 못한 채노파의 아들과 사별후에도 장려아의 두아를 취하려 하는 나쁜 마음에도 굴하지 않고 강한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 하지만 관아의 재판에서 시어머니인 채노파가 형벌을 감당하지 못할것 같은 이유로 거짓 자백을 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보이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천장 : 주인공 두아의 아버지로, 두아를 채노파에게 어쩔수 없이 팔고 과거 시험을 보러가게 되는 가난한 선비이다. 두아가 죽게 된 후에야 귀신이 된 두아를 만나 두아의 억울함을 풀어 주게 되어 마지막에 나마 아버지로서의 딸의 억울한 죽음의 누명을 벗겨준 일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채노파 : 고리대금업을 하게 되는 과부이다. 두천장 에게 두아를 50냥을 주고 자신의 며느리로 들이지만 허약한 몸의 아들은 두아가 17세에 혼절하게 되어 두아와 함께 과부로 함께 생활하고 있던중, 새로의 라는 의원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것을 장영감 부자의 도움으로 구사일생으로 구하여 졌지만 은혜라는 책임하에 장영감 부자를 보내지 못하는 우유 부단함이 돋보이는듯 하다.
장려아 : 아버지인 장영감과 함께 채노파를 구하여 주지만 억지를 부려 두아를 아내로 맞아 들이고자 채노파를 독살하려는 과정중에 아버지인 장영감을 죽이게 되지만, 두아에게 누명을 씌워 두아를 죽이게 된다.
태수 : 관아에서 두아의 재판을 맡게된 되지만 엉터리 재판으로 두아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 붙이게 되는 원인이 되는 인물이다.
두아가 억울하게 죽게 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장려아라고 생각하지만 두아원에서 담고 있는 또 다른 의미가 관리의 부패로 말미암아 두아가 억울하게 죽게 되었다는 사실은, 권선징악 보다는 관리의 부패로 인한 잘못이 가장 큰 몫을 차지 한다고 생각한다. 부패 관리를 벌한다는 점에서 내용을 부각 시킨다면 태수의 비중이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해 본다.
○ 내가 생각하는 두아원에서의 허점
1. 자신의 거짓자백 으로 처형 당하 게 된 두아
2. 과거에 응시하고 17년 동안 딸을 찾지도 않은 아버지
3. 자신과 자신의 아들의 아내가 되지 않으면 은혜를 갚지 않는데에 대한 보복으로 죽이겠다는 장영감 부자
이외에 빛을 갚지 않아 살해를 하려는 새로이라는 의사의 설정등은 현재 우리의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언급하지는 않지만 위에서 설명한 이 세 가지 가장 중요한 허점으로 이야기의 진행은 작가가 원하는 데로 진행이 될 수밖에 없는 형태로 보인다. 물론 두아원은 현실을 담은 이야기 라기 보다는 한편의 잡극으로 현재의 연극과 같은 개념이며, 신화를 주제로 한 한 연극이 아니라는 점에서 위의 3가지 허점은 가장 눈에 보이는 작가의 설정이 아닌가 싶다. 물론 당시의 시대 상황이 현대의 생각과 다르다는 점에서의 허점일뿐이다. 두아가 귀신으로 나오는 장면은 위의 세 가지 허점으로 나오는 결론과는 다르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고, 두아가 억울하게 죽어 서리가 내리며 가뭄이 드는것 역시 결론을 도출해 내기 위한 필수 요소 이므로 허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 현대의 연극, 영화와 비교.
두아원 원본으로 실제 연극으로 만든다고 한다면 어떨까? 대사가 있는 인원 14명, 각색과 연출하기 에 따라서 시간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략 1시간 30분 전후 정도의 연극으로 만들면 두아원의 모든 상황을 연출하고 표현해 나가는데 문제는 없을듯 하다.
그리고 두아원의 시작부터 볼 수 있고 중간 중간에 각 인물들이 읊는 시는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도 하지만 현대의 영화나 연극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중간삽입 음악 또는 장소, 배경의 전환 정도로 해석을 하면 쉽게 연극에도 적용할 수 있을 듯 보인다. 실제로 대본을 모두 읽은 후에 머릿속에서 상상되는 내용은 한편의 연극을 보는듯 하였고, 유명한 근, 현대의 연극 작품과 과 비교해도 내용에서는 그리 특별한 부담감 없이 볼 수 있는 내용들이라 생각된다.
○ 두아원을 마치며
실제로 최근에 읽어본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 극본 이지만 현대의 연극 또는 영화와 비교하거나 우리나라의 춘향전 등과 비교해 봐도 실제 별 문제 없이 관객 앞에 내 보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좋지 않은 점만 바라봐서 나름대로 허점이 눈에 띄는 작품이라 생각이 되고, 좀더 세분한 분석이 미흡하고, 인물별 특색이 잘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은 한편의 잘 짜여진 연극을 보는듯 했고, 중간 중간에 장소나 배경이 바뀌거나 새로운 막으로 전환될 때에 각 인물들이 시를 읊는 장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자신의 상상력을 만들어 주는 시간을 주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들어가는 글
관한경의 작품인 두아원은 물론 요즘 생각에서는 생소하긴 하겠지만 의외로 요즘 유행하는 페미니즘이 은근히 섞여있다.
비극적인 장치를 구성하여 그로 인한 억압된 여성의 한을 대변하는 것은 이 극본에 정확하게 표현되고 보여진다.
그렇지만 당시 세익스피어나 현대의 처녀들의 저녁식사 나 최근 개봉한 싱글즈 같이 남성들이 바라본 여성이기에 여성들의 진정한 생각을 보여준다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단지 어느 정도 보여주고 있을뿐…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우리나라의 심청전, 춘향전도 폐미니즘 사상의 고전이 되지 않을까?
폐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 정도로 하고 이제 좀 나만의 자유로운 생각을 이야기 해볼까?
생각
이 두아원 극본을 읽으면서 나의 머리 속에서는 다양한 생각이 지나갔다. 사회 비판이나 폐미니즘을 빗대어 이야기를 할까? 너무 식상하지 않을까? 등 여러가지 생각 중에 이것을 영화의 시놉시스나 시나리오로 접목을 시키면 무언가 새로운 방법론이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극본 자체적으로는 구성 흐름의 수정을 가하면 평범한 극에서 바로 호러의 완벽한 장치 구성이 이루어질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시대 배경을 현대적으로 해야겠지만…(요즘 유행도 많이 넣고 해야하는…)
일단은 호러 영화의 구성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 맞춰 수정된 두아원의 구성 방식을 맞춰보도록 하는 걸로 구성할까 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한이다.하지만…
호러 영화의 초 고전인 노스페라투를 필두로 하여 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의 영화는 호러의 대명사가 되었다.(보지는 못했다는…)
이후 다양한 호러 영화의 몬스터들이 관객의 감정선을 쥐었다 폈다 했었고 최근까지 “프레디 대 제이슨”이라는 변종 호러 영화까지 나왔었다. (해외의 경우)
그리고 동양 쪽에서는 호러물은 몬스터 쪽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귀신의 존재로써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표현 방식에서의 차이일 뿐 그 깊은 뿌리는 원한에 의한 시작이 있다.(과거 몇몇 서양 몬스터 공포 영화 및 하드코어 슬러쉬 무비 제외)
일본에서 시작된 xx괴담 시리즈의 영화, 링 등에 발맞춰 한국에서 제작된 여고괴담 시리즈 등은 그 속에 존재하는 가해자는 원래는 피해자였고 그들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다시 그들에게 한을 남긴 사람들에게 복수한다는 기본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과 호러물 구조
한 (恨)
1.(지난 일이) 못내 분하고 억울하게 여겨져 마음에 맺힌 것, 또는 맺힌 그 마음. 원한.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이젠 죽어도 한이 없다./그리 서러워 마라, 한 없는 삶이 어디 있느냐.
2.[하다형 타동사](어떤 일이) 몹시 뉘우쳐지거나 원망스러워 속절없이 한숨을 쉼. 한탄.
가는 세월 탓하지 말고, 오는 백발(白髮) 한하지 마라.
(출처: 네이버 국어 사전)
세상 사람들은 한이라는 것은 가장 공포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눈이 내린다”라고…
각설하고 한은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있어서도 안되는 것일 것이고 그 한을 공포물에 적용시킨다는 것은 어찌 보면 세계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 우리가 여름에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은 당연하지만 한 맺힌 귀신이 꼭 등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두아원은 고전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에 대한 비판에 곁들여 원한의 구조가 잘 되어있다.
그렇지만 두아원의 방식은 시간 흐름에 따른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호러물의 방식으로 볼 때 너무 완만한 부분이 있고 약간은 정적인 부분과 궁금증을 일으키기에는 약한 부분이 너무 많다.
기본적으로 호러물의 극 흐름은 거의 90%정도는 이런 식으로 흐르지 않는가?
호러물 구성도
1. 저주받은 곳에서 피해자 발생, 혹은 알 수 없는 재난을 당함.
2.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음(가끔씩 깜짝 놀라게 하는 장치가 나옴)
3. 결국에는 가해자(귀신이나 몬스터 등)의 원한을 알게 됨(가해자가 알고 보니 피해자였다든지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로)
4. 끝은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거나 살리는 것은 영화 흐름에 맞게 가장 좋은 쪽으로 만들어짐.)
대강 이런 식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
두아원은 자체적으로 봤을 때 시간 흐름 구성을 약간 비틀면 호러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강의 스토리 흐름을 잡으면 다음과 같다.
두아원을 호러물로 만들어본 수정본
① 중국 원나라대의 어느 마을 새로 염방사로 임명된 두천장이 오게 된다.
그 마을은 몇 년 째 흉작에다가 이상한 병(시나리오의 극적인 구성을 위해서 약간의 수정)이 돌고 있다는 마을이다.
그렇지만 그는 이 마을로 온 이유는 자신의 딸인 단운(두아)를 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하지만 딸이 있음은 극의 중간 쯤에 넣어서 처음에는 무언가 숨겨진 과거가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좋겠다.)
② 그는 마을에서 과거에 사형 당한 사람들에 대한 명단을 본다.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일을 뿌리 뽑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잠들고…
③ 잠을 자는데 하얀 소복을 입은 목 없는 여인이 머리를 들고 나타나서 피를 흘리고 간다.(본래 두아가 목이 짤려서 죽였으므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이게 옳다는 생각) 그리고 그의 얼굴에 여인의 머리에서 떨어진 피가 흥건해진다.
④ 두천장는 깜짝 놀라서 일어나고 귀신은 어디론가로 간다. 두천장 따라감.
⑤ 귀신 장려아의 집에서 사라지고 다음 날은 채노파의 집에서 사라지고 셋째 날은 문서의 자신의 기록에다 피를 쏟아 놓는다. (중간에 귀신이 들어간 곳의 자제들이 병을 얻거나 잔혹하게 죽음)
⑥ 단서를 얻는다. 아무리 두천장이 아버지이지만 단서를 얻는 과정이 극적이어야 한다. 죽을 뻔한 장치를 구성하는 것이 극의 흐름상 더욱 좋을 듯 싶다. 중간에 병에 걸린 사람들과 주변인의 만남에서의 증언을 얻어서 천천히 알게되는 추리극 적 구성이 있어서 관객들이 처음부터 두아의 과거에 대해 알게 해서는 안되게 해야 한다.
⑦ 결국의 극의 3분의 2쯤에서 과거에 대한 단서들을 전부 알게 된다.(과거 회상 구성을 써도 괜찮음.)
⑧ 마지막에는 두아원 극본에 있는 대로 두아를 죽게 한 사람들을 죽이고 사형시키고 두아는 사라진다는 구성으로 끝마친다.
대강의 호러로의 구성은 이러하다.
물론 중간에 깜짝 놀라게 하는 구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호러물을 받쳐주는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두아원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얼마 전에 장화 홍련이라는 영화가 호러물이라는 장르로 개봉한 적이 있었다.
본인이 보았을 때 솔직히 호러 물이라고 보기에는 영화적으로 놀라게 하는 구성 몇가지 빼고는 가히 싸이코 드라마라는 생각밖에 안들더라는…
역시 어색한 접근 방식보다는 한에 의거한 것은 호러물을 구성하는 것이 가장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이 두아원 자체는 극의 구성을 약간만 바꿈으로써 완벽한 호러 구성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나의 의견이다
좀 더 유행에 맞추고 뭔가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의외로 사람들이 호러물을 즐긴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 호러물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현대 시대를 사는 내가 접하는 미디어들은 거의 모두 여성에 대한 시대에 대한 사상이 포함되어 있기에 더 이상 페미니즘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이 두아원이라는 원작 자체에 여성에 대한 사상이 있기 때문에 그 당시 사회 비판이라는 구조와 합치면 더더욱 커다란 한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이 두아원의 한은 거의 그 당시의 시대상으로 봤을 때 엄청난 반항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으리라 본다.
본래의 극의 구성도 완급 조절도 나쁘지는 않으나 자극이 적고 과연 이렇게 물흐르듯 흘러가는 구성이 요즘 사람들에게 통할까 한 번 생각해 본다.
본인이 군대 시절 유행했던 일본 호러 소설 “링”이라는 책이 있다.(링2, 링3는 별로라는…)
극의 시간의 흐름을 빼고 보면 거의 다른 모든 점에서 두아원과 설정이 비슷한 흐름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고 역시 한이라는 것은 만국 공통의 공포를 만드는 중요한 장치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맺음말
지금까지 조금 특이하게 두아원에 대한 접근을 해보았다.
본인이 본래 영화를 좋아하기에 영화적인 접근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에 호러물을 제물 삼아서 두아원을 바꿔 봤다.
쓰고 나니 글의 깊이가 약간 단순한 감이 없지 않지만 두아원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은 “아~~이렇게 좋은 영화 대본이…” 이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 쪽으로 흐르는 것보다 원한에 의한 공포 영화 구성이 적격이라는 생각에 분해 조립을 해볼까 했는데 지면상(대사에서 설정 흐름까지 재구성을 한다면 대략 20장 정도로 구성이 되지 않을까?)의 문제로 과감히 포기하였다.
폐미니즘과 당시 시대상에 대한 비판으로 나가거나 줄거리에 대한 느낌 방식으로 나간다면 너무 식상한 부분도 없잖아 있을 듯 싶어서 과감하게 한번 내가 생각하는 공포 쪽으로 이야기를 끌어보았다.
여유가 된다면 자료를 완벽하게 모아서 한번 재대로 각본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